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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

(100)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

근대적 독립국가 건설의 원동력 민족주의,
그 유효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2년 남덕우 전 부총리의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를 1호로 발간하며 탄생을 알린 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가 100호를 맞았다. 그간 전문서적의 대중화와 소장학자 발굴에 성과를 거둔 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한발 앞서 기획하고 최고 전문가만을 필자로 엄선하여 정확하고 힘 있는 메시지를 던져 우리 시대의 과제에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SERI 연구에세이 100호는 건국 60주년을 맞아 기획되었다. 현재 다양한 비판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쟁과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21세기 한국에서 민족주의의 가치와 유효성을 고민해 보고자 했다. 저자는 민족주의가 짧은 시간 안에 근대적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이념적 동력이었고, 근대국가 완성을 향한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는 지금도 그 유효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사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민족주의를 연구해온 저자의 꼼꼼한 안내에 따라 근대 한국사상사 여행에 동참해보자.



도전받는 한국 민족주의 -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과 지구화의 급진전
한국의 민족주의는 지난 10여 년간 두 번의 충격을 겪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이 도입되고 그 영향으로 ‘탈(脫)민족주의론’이 대두한 것이고, 두 번째는 지구화(globalization)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급증한 것이다. 첫 번째 충격은 오랫동안 절대적 권위를 지녀온 민족주의를 한 귀퉁이에서 무너뜨리는 시초가 되었으나 지식인 사회 내의 논의였기 때문에 대중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충격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현실이었기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는 전대미문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저자는 세 가지 쟁점 - ① 한국,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나 ②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쇠퇴하는가 ③ ‘민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을 제시하며 그 의미를 짚어본다.

저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아직까지 한국을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지구화 시대를 살면서 인종과 민족 차별, 순혈주의의 굴레를 벗어나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로 편입되는 사람들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자고 촉구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근대의 노년기를 맞고 있는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는 아직도 근대국가 완성을 위해 달려가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본다. ‘근대 완성’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근대 극복’을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제 민족의 범주는 남한과 북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을 모두 포함하여 설정해야 하고, 그 틀 속에서 구성원의 결속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한국 민족주의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렇게 다양한 도전과 비판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 민족주의는 어떤 계보를 걸어왔고 그 본류는 무엇인가.

한국 민족주의 본류(本流)는 우파 민족주의 - 현실에서는 승리했지만 이론에서는 패배하다
우리 역사에서 우파 민족주의와 좌파 민족주의의 대립과 경쟁이 시작된 것은 1876년 개항으로 근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서부터였다.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일본과 미국을 모델로 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목표로 했으나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그들의 사회 체제인 자본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좌ㆍ우파 민족주의자들은 독립과 근대사회 건설 방향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경쟁하다가 결국 우파는 남쪽으로, 좌파는 북쪽으로 집결하게 됐다.
정치투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체계적 이론을 갖추지 못하던 남한의 우파 민족주의는 1960년대 들어 ‘근대화론’의 형태로 전개되면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이념적 토대가 됐으며 한국을 불과 한 세기 만에 세계사에서 주목 받는 근대국가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산업화의 성공을 토대로 민주화를 추진해야 할 1980년대에 우파 민족주의는 시대 상황에 맞는 새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사상적으로 진화하는데 실패한다. 현실에서는 승리했지만 이론에서는 패배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산업화와 민주화가 발전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낳았고 일부 지식인사회와 학생운동권 일각에서 둥지를 틀었던 ‘민중민족주의’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결국 한국민족주의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저자는 산업화가 민주화의 전제 조건이고 경제성장과 민족의 번영이 민족주의의 핵심과제라고 보고 이를 이념적 바탕으로 삼아 6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근대적 독립국가 수립을 가능케 한 우파민족주의야말로 한국민족주의 본류라는 결론을 내린다.

되살려야 할 ‘열린 민족주의’의 전통
지금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 운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의의 핵심은 ‘열린 민족주의’가 가능한가 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세계사에서 ‘닫힌 민족주의’가 전체주의와 결합하거나 인종적 순결성을 강조할 때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저자는 우리 민족주의는 늘 세계를 향해 열려있었고 폐쇄적이거나 고립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항상 자본주의라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의 발전 방략을 찾았다는 것이다.
세계와 호흡하는 한국의 ‘열린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저자는 일제시대에 활동한 민족주의자 안재홍(安在鴻, 1891~1965)에게 주목한다. 안재홍은 평생 민족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열린 민족주의자’였다. 또 민족의 발전을 위해 계급이나 지역 구분을 넘어 단결해야 한다고 보고 피지배계급까지 포함하는 ‘신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족에서 세계로, 다시 세계에서 민족으로’를 내건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만들어낸 ‘열린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사상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ㆍ25 전쟁 납북되는 바람에 그의 사상이 발전적으로 계승될 기회를 잃어버려 큰 아쉬움을 남긴다.
저자는 세계사의 흐름과 민족주의를 연결시키려한 이러한 열린 민족주의의 전통을 살려 민족 감정과 실리 사이를 오가는 요즘 젊은 세대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며 이것이 한국민족주의의 앞날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본다.

아직도 유효한 ‘근대화 민족주의’, 통합의 역사인식으로 단절적 접근 극복해야
세계사에서 민족주의는 근대화의 이념이다. 근대화는 대부분의 경우 민족 단위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실현하는 주역은 민족국가다. 그리고 그 정신적 토대가 민족주의다. 민족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근대국가는 ‘독립ㆍ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저자는 이제 한국 민족주의가 ‘선진화 민족주의’라는 근대국가 발전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본다. ‘선진화’의 지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세계경제 10위권 국가 진입 등의 경제적 측면과 교육ㆍ의료 등의 사회 시스템과 높은 국민의식 등이다. 즉, 아직 근대화를 완성하지 못한 우리에게 근대화 이념으로서 한국 민족주의는 ‘선진화’가 달성될 때까지 여전히 유효하며 또한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면서 통합적인 이념으로 우리가 갈 길을 이끌어 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또 한 가지 저자는 한국 민족주의 이해에 혼란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각 발전단계의 주역들이 연속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과 대립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승만은 정적(政敵)인 김구 등을 적극 수용하지 않았고 박정희는 이승만의 귀국을 막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박정희의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과정으로 인식했다.”(123P)

이런 불연속성은 그들이 각각 한 부분을 맡아서 성취했던 한국 민족주의의 전체 모습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았다. 이는 때로 역사의 정통성마저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한국민족주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한국근현대사를 연속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발전의 이념적 동력에 관한 건강하고 열린 논의가 폭넓게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60년 우리 역사는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대접받는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과제를 성취해온 자랑스러운 과정이었다. 저자는 이 책이 자랑스러운 역사 인식과 그것을 가능케 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앞으로 다가올 60년의 더 큰 성공을 다짐하는 의미 있는 매개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프롤로그: 21세기 한국, '민족주의'는 유효한가

1. 도전받는 한국민족주의
    01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과 탈(脫)민족주의론의 대두
    02 지구화(globalization)가 던진 충격

2. 한국민족주의를 둘러싼 세 가지 쟁점
    01 한국, 다민족ㆍ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나
    02 동북아에서 민족주의는 쇠퇴하는가
    03 '민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3. 한국민족주의를 보는 네 관점
    01 ‘민족주의’ 고지를 장악하라 : 좌ㆍ우파 민족주의의 경쟁
    02 ‘민족주의’를 넘어서 : 좌ㆍ우파 세계주의의 동상이몽

4. 한국민족주의, 현실과 전망
    01 한국민족주의에 관한 주요 논쟁들
    02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근대화 민족주의’

에필로그: 앞으로 60년, 더 큰 성공을 향하여
참고문헌

이선민(李先敏)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사ㆍ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년간 임시연구원(촉탁)으로 일한 후 1988년 4월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편집부, 월간조선부, 사회부를 거쳐 1993년부터 문화부에 근무하면서 종교ㆍ학술담당 기자, 출판팀장을 맡았고, 2006년 12월부터 논설위원(문화 담당)으로 있다.
많은 동년배들처럼 사회에 나올 때까지 해외여행 한번 해보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신문사에 들어온 덕분에 40여 차례에 걸쳐 20여 개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1997년과 2003년에는 각각 영국 런던대 SOAS(동양아프리카학대학)와 미국 브라운대 왓슨국제문제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하면서 ‘세계 속의 한국’에 대해 고민할 기회도 가졌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전공뿐 아니라 인문ㆍ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높아 ‘저널리스트 같은 학자’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신문사에 들어와서는 거꾸로 ‘학자 같은 저널리스트’라는 평을 듣고 있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연결하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두 분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의 성지》(1997)와 《신앙의 고향을 찾아서》(200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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